중세 일본의 장군인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1542~1600)의 후손 집안에는 대대로 전해져 오는 보물이 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장군전(大將軍箭)과 장군전(將軍箭).
대장군전과 장군전은 조선시대 총통에서 발사하는 초대형 화살이다. 이들은 길이 2m에 굵기가 10cm가 넘어 화살이라기보다 차라리 나무기둥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지난 11회에 소개한 것처럼 천자총통에서 발사한 대장군전은 수백m를 날아가 시멘트 석축을 뚫고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 수군의 임진왜란 종군기인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를 보면 “조선군의 대형화살에 맞아 일본 배의 망대와 갑판, 방패가 모조리 부서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초창기의 화포류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형화살이 사용됐으나 나무기둥 수준의 초대형화살을 사용한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대장군전과 장군전은 ‘병기도설’(兵器圖說)과 ‘융원필비’(戎垣必備) 같은 문헌에 설계도만 남아 있을 뿐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전해 오지 않는다. 해군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대장군전과 장군전은 모두 1980년대 이후에 제작된 추정 복원품일 뿐 진품 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사연으로 한국에도 없는 대장군전이 구키 가문에 전해져 왔을까.
구키 요시다카는 일본 시마(志摩) 지역 영주이자 임진왜란 당시 수군 장수로 조선침략의 최선봉에 섰던 장본인이다.
구키는 1592년 7월에 벌어진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에서 이순신 장군과 대결했다. 이 해전에서 구키는 참패를 면치 못했다. 구키가 타고 있던 군함의 돛대가 조선군의 함포사격으로 부러질 정도로 위급한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간신히 살아 남은 구키는 조선 수군이 발사한 대장군전에 강한 인상을 받은 탓인지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의 배에 대장군전을 싣고 갔다. 이후 그 대장군전은 구키의 후손들이 소중히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일본 규슈(九州)에 위치한 가라쓰(唐津)성 역사자료관에 소장돼 있다.